중세로 돌아가는 교회 한국 개신교가 중세로 가고 있다는 말은, 기독교가 천주교화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루터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정신에서 벗어난 천주교의 죄악상을 탈피하고자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님들이 자꾸만 천주교화(중세화)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 문제점 몇가지를 지적해 보면... 1. 목회자가 강단에서 까운을 입는 문제 *이것은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별 다른 생각없이, 의사가 까운을 입듯이, 판사가 법복을 입듯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은 가장 먼저,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없애는 것입니다. 까운은 바로 그 종교개혁의 정신을 근본부터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분의 차이가 없다는 말이지 사명의 차이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까운을 입는 문제와 연관된 문제로서, 강대상에 드림천을 늘어뜨려 놓는 문제입니다.

그런 교회의 목사님에게 물어보니 자신도 왜 그런는지 모르지만 웬지 권위가 있는 것 같아서 따라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2. 로만칼라 와이셔츠를 입는 문제 *신부들은 로만칼라 와이셔츠를 입습니다. 그것이 멋있어 보여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서는 절대로 입을 수 없는 옷입니다. (1)로만칼라 와이셔츠는 신부들이 외출할 때 간편한 복장으로 입는 것이지 소위 미사 때는 절대로 입을 수 없는 옷이다.(그런데 목사님들이 로만칼라-그것도 절기에 맞춰 여러가지 색갈로 바꿔 입는-를 입고 버젓이 주일낮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2)"나는 독신입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옷입니다. (많은 교단의 경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목사안수를 주지 않는다.) 3. 강대상을 강단 위에 두개를 놓고, 하나는 설교단으로, 하나는 사회자용으로 사용하는 문제 *개신교의 생명은 말씀선포에 있다. 천주교처럼 의식중심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강대상은 중앙에 와야 한다.

굳이 사회자용 강대상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큰 교회라도 설교자, 기도자, 사회자 외에는 직접적인 예배자가 아니다, 성가대 지휘자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강단 위에 십자가(교단에 따라서 우상시 해서 안 거는 교회도 있다) 밑에다 일종의 제단을 차려놓고 그 위에 성경책을 펴놓고, 양쪽에 촛불(대개는 촛불모양의 램프)을 켜 놓는 곳도 많다. 이게 정말 문제이다. 교회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아니다. 제사는 2000년전 갈보리 산상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 다시는 속죄할 제사를 드릴 이유가 없다.

이제는 그런 주님에게 감사의 예배만 드리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 00제단"(교회를 지칭함), 혹은 "새벽제단"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니다. 교회는 절대로 제단이 아니다. 그냥 "00교회"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교회는 말씀을 강론하는 "강단"이지 절대로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아니다, 또, 성경책을 제단 위에다 펴놓는 문제인데, 이것은 과거에(중세) 성도들은 성경을 해석할 권한이 없다 해서 성도들이 성경을 집어가지 못하도록 성경 안에다 심을 박고 굵은 쇠사슬로 묶어놓는 습관이지, 오늘날 누구나 성경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외에도 더 많이 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면 왜 이러한 일이 오늘날 개신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1)천주교는 의식중심이고, 개신교는 말씀중심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거나, 모르고 있거나,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며, 종교개혁의 근본 정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2)선배들이 하니까 의미도 모른 채 그냥 답습하기 때문이다. (3)허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주교의 복장이나 건물이나 예배당 구조가 웬지 멋있어 보이고, 성도들을 주눅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권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